예안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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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안 김씨는 신라 김알지의 후손인 김상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시대에 호장을 지낸 김상을 시작으로, 조선 시대에는 이조판서를 지낸 김담, 대사헌 김륵 등이 배출되었다. 주요 인물로는 김담, 김륵, 김해, 김약련, 김찬규, 김동진, 김화진 등이 있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이 많다. 예안 김씨는 다양한 파로 분파되었으며, 강원특별자치도, 충청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등지에 집성촌이 존재한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5,313명이 예안 김씨 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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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안 김씨 - 김담
김담은 조선 세종, 문종, 세조 시대의 문신이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월력 연구가로, 이순지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천문학과 역법 발전에 기여했으며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 편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청렴하고 근신한 성품으로 칭송받아 사후 문절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예안 김씨 - 김수진 (1939년)
김수진은 장군석을 발견하고 명명하여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지질학과 교수와 한국광물학회 초대 회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광물학자로, 그의 업적을 기리는 학술상이 제정되었다.
예안 김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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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성씨 | 예안 김씨 禮安金氏 |
이칭 | 선성 김씨(宣城金氏) |
나라 | 한국 |
관향 |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
시조 | 김상(金尙) |
중시조 | 김로(金輅) |
원시조 | 김알지(金閼智) |
인물 | 김소량, 김숙량, 김담, 김수손, 김륵, 김해, 김약련 |
집성촌 |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정안면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 천내리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구도리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어양리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석포리 예천군유천면 손기리 경북 문경시산북면 내화리 |
년도 | 2000 |
인구 | 15,313명 / 4,859가구 |
2. 역사
예안 김씨는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 때부터 조선 초까지 예안 지역의 호장을 세습했다. 시조 김상 이후, 8세 보승낭장 김로를 중시조로 하여 가계가 번성하였다.[1] 김로의 손자 김담과 현손 김륵은 문과에 급제하여 각각 이조판서와 대사헌을 역임하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2. 1. 시조 및 초기 역사
시조 '''김상'''(金尙)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2세 김존성(金存誠)·3세 김돈부(金敦富)·4세 김희보(金希寶)까지 예안의 호장을 지냈고, 5세 김성세(金成世)는 봉익대부 밀직사, 6세 김뉴(金紐)는 중현대부 대호군, 7세 김방식(金方軾)은 봉선대부 비순위정용호군을 지냈다.
8세 보승낭장 '''김로'''(金輅)를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계대(系代)한다. 중시조 김로(金輅)는 손자 김담(金淡)이 귀하게 되어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그의 아들 4형제(김소양, 김숙양, 김중양, 김의양)가 가계를 크게 번성시켰다.[1] 김로(金輅)의 아들 김소량(金少良)은 현감을 지냈고, 김소량(金少良)의 아들 김증(金潧)은 문과에 급제하여 금산군수를 지냈다.
김로(金輅)의 손자이자 김소량(金少良)의 아들 김담(金淡)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에 이르고 문절공(文節公)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김담(金淡)의 현손 김륵(金玏)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大司憲)에 이르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2. 2. 중시조 및 가문의 번성
시조 '''김상'''(金尙)은 신라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예안 김씨는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 예안 지역의 호장을 세습하였다. 2세 김존성(金存誠), 3세 김돈부(金敦富), 4세 김희보(金希寶)까지 예안의 호장을 지냈고, 5세 김성세(金成世)는 봉익대부 밀직사, 6세 김뉴(金紐)는 중현대부 대호군, 7세 김방식(金方軾)은 봉선대부 비순위정용호군을 지냈다.
8세 보승낭장 '''김로'''(金輅)를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계대(系代)한다. 김로(金輅)는 손자 김담(金淡)이 귀하게 되어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김로의 아들 4형제(김소양, 김숙양, 김중양, 김의양)는 가계를 크게 번성시켰다.[1] 김로의 아들 김소량(金少良)은 현감을 지냈고, 김소량의 아들 김증(金潧)은 문과에 급제하여 금산군수를 지냈다.
김로의 손자이자 김소량의 아들 김담(金淡)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에 이르고 문절공(文節公)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김담의 현손 김륵(金玏)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大司憲)에 이르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2. 3. 분파
예안 김씨는 다음과 같이 분파된다.[1]
예안 김씨 가문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3. 주요 인물
이름 세 활동 시기 주요 업적 김담 10세 조선 세종, 문종 이조 판서 역임. 단계서원, 구강서원 배향. 김수손 조선 성균관 대사성, 이조 참판 역임. 경국대전 편찬 참여. 김륵 14세 조선 선조 이조 판서 추증. 구강서원 배향. 김해 14세 조선 선조 임진왜란 때 상주 목사로 참전, 순절. 이조 참판 증직. 김약련 21세 조선 영조 동부승지 역임. 문집 두암집 간행. 김찬규 25세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단체 대동단 및 의용단 결성.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2] 김동진 26세 일제강점기 독립의군부 활동 등으로 2차례 피검 및 구금.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3] 김화진 26세 일제강점기 신간회 영주지회, 영주농민조합 집행위원 등 역임.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4][5]
3. 1. 조선 시대
3. 2. 일제 강점기 및 대한민국
4. 집성촌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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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정안면 |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 천내리 |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구도리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어양리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석포리 |
5. 인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예안 김씨는 4,859가구, 총 15,31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6]
참조
[1]
웹인용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https://web.archive.[...]
2011-01-25
[2]
웹사이트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공훈자료
https://search.i815.[...]
[3]
웹사이트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공훈자료
https://search.i815.[...]
[4]
뉴스
옛 선비정신 깃든 항일운동의 거점 영주 ‘아도서숙’ 복원 움직임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1-01-23
[5]
웹사이트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공훈자료
https://search.i815.[...]
[6]
지식사전
예안김씨
https://terms.naver.[...]
201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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