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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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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안 김씨는 신라 김알지의 후손인 김상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고려 시대에 호장을 지낸 김상을 시작으로, 조선 시대에는 이조판서를 지낸 김담, 대사헌 김륵 등이 배출되었다. 주요 인물로는 김담, 김륵, 김해, 김약련, 김찬규, 김동진, 김화진 등이 있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이 많다. 예안 김씨는 다양한 파로 분파되었으며, 강원특별자치도, 충청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등지에 집성촌이 존재한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5,313명이 예안 김씨 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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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 김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성씨예안 김씨
禮安金氏
이칭선성 김씨(宣城金氏)
나라한국
관향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시조김상(金尙)
중시조김로(金輅)
원시조김알지(金閼智)
인물김소량, 김숙량, 김담, 김수손, 김륵, 김해, 김약련
집성촌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정안면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 천내리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구도리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어양리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석포리
예천군유천면 손기리
경북 문경시산북면 내화리
년도2000
인구15,313명 / 4,859가구

2. 역사

예안 김씨는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 때부터 조선 초까지 예안 지역의 호장을 세습했다. 시조 김상 이후, 8세 보승낭장 김로를 중시조로 하여 가계가 번성하였다.[1] 김로의 손자 김담과 현손 김륵은 문과에 급제하여 각각 이조판서와 대사헌을 역임하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2. 1. 시조 및 초기 역사

시조 '''김상'''(金尙)은 신라 대보공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2세 김존성(金存誠)·3세 김돈부(金敦富)·4세 김희보(金希寶)까지 예안의 호장을 지냈고, 5세 김성세(金成世)는 봉익대부 밀직사, 6세 김뉴(金紐)는 중현대부 대호군, 7세 김방식(金方軾)은 봉선대부 비순위정용호군을 지냈다.

8세 보승낭장 '''김로'''(金輅)를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계대(系代)한다. 중시조 김로(金輅)는 손자 김담(金淡)이 귀하게 되어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그의 아들 4형제(김소양, 김숙양, 김중양, 김의양)가 가계를 크게 번성시켰다.[1] 김로(金輅)의 아들 김소량(金少良)은 현감을 지냈고, 김소량(金少良)의 아들 김증(金潧)은 문과에 급제하여 금산군수를 지냈다.

김로(金輅)의 손자이자 김소량(金少良)의 아들 김담(金淡)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에 이르고 문절공(文節公)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김담(金淡)의 현손 김륵(金玏)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大司憲)에 이르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2. 2. 중시조 및 가문의 번성

시조 '''김상'''(金尙)은 신라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예안 김씨는 김알지의 후손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 예안 지역의 호장을 세습하였다. 2세 김존성(金存誠), 3세 김돈부(金敦富), 4세 김희보(金希寶)까지 예안의 호장을 지냈고, 5세 김성세(金成世)는 봉익대부 밀직사, 6세 김뉴(金紐)는 중현대부 대호군, 7세 김방식(金方軾)은 봉선대부 비순위정용호군을 지냈다.

8세 보승낭장 '''김로'''(金輅)를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계대(系代)한다. 김로(金輅)는 손자 김담(金淡)이 귀하게 되어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김로의 아들 4형제(김소양, 김숙양, 김중양, 김의양)는 가계를 크게 번성시켰다.[1] 김로의 아들 김소량(金少良)은 현감을 지냈고, 김소량의 아들 김증(金潧)은 문과에 급제하여 금산군수를 지냈다.

김로의 손자이자 김소량의 아들 김담(金淡)은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에 이르고 문절공(文節公)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서원에 배향되었다. 김담의 현손 김륵(金玏)도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大司憲)에 이르고 서원에 배향되었다.

2. 3. 분파

예안 김씨는 다음과 같이 분파된다.[1]

파명(한자)시조
교리공파(校理公派)김증
문절공파(文節公派)김담
통찬공파(通贊公派)김홍
참판공파(參判公派)김신
대사헌공파(大司憲公派)김지
장령공파(掌令公派)김비
학생공파(學生公派)김존의


3. 주요 인물

예안 김씨 가문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이름활동 시기주요 업적
김담10세조선 세종, 문종이조 판서 역임. 단계서원, 구강서원 배향.
김수손조선성균관 대사성, 이조 참판 역임. 경국대전 편찬 참여.
김륵14세조선 선조이조 판서 추증. 구강서원 배향.
김해14세조선 선조임진왜란 때 상주 목사로 참전, 순절. 이조 참판 증직.
김약련21세조선 영조동부승지 역임. 문집 두암집 간행.
김찬규25세일제강점기독립운동단체 대동단 및 의용단 결성.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2]
김동진26세일제강점기독립의군부 활동 등으로 2차례 피검 및 구금.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3]
김화진26세일제강점기신간회 영주지회, 영주농민조합 집행위원 등 역임.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4][5]


3. 1. 조선 시대


  • 김담(金淡, 1416년~1464년): 자(字)는 거원(巨源), 호(號)는 무송헌(撫松軒)이다. 조선 세종, 문종 때의 명신으로 이조 판서를 역임했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며, 단계서원(丹溪書院), 구강서원(龜江書院)에 배향되었다.
  • 김수손(金首孫): 김로(金輅)의 증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대사성과 이조 참판을 역임하고 경국대전 편찬에 참여했다.
  • 김륵(金玏, 1540년~1616년): 자는 희옥(希玉), 호는 백암(栢巖)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조선 선조 때의 명신이다. 이조 판서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민절(敏節)이며, 구강서원(龜江書院)에 배향되었다.
  • 김해(金澥, 1534년~1593년): 자는 사회(士晦), 호는 운송(雲松)이다. 임진왜란 때 상주 목사로 참전하여 아들 김경원(金慶遠)과 함께 순절했다. 이조 참판으로 증직되었고, 공주 우정면 내산리에 충신효자 정려각이 있다.
  • 김약련(金若鍊, 1730년~1802년): 자는 유성(幼成), 호는 두암(斗庵)이다. 조선 영조 때 동부승지를 지냈으며, 문집으로 두암집(斗庵集)이 있다.
  • 김찬규(金燦奎, 1866년~1929년): 자는 사석(士奭), 호는 석연(石然)이다. 독립운동단체 대동단 및 의용단을 결성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제255호가 추서되었다.[2]
  • 김동진(金東鎭, 1867년~1952년):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정산(貞山)이다. 독립의군부 활동 등으로 2차례 피검 및 구금되었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 제1956호가 추서되었다.[3]
  • 김화진 (金華鎭, 1904년~1946년): 자는 영중(英仲), 호는 대팽(大팽)이다. 무섬 출신으로, 경북 영주청년동맹과 신간회 영주지회 집행위원, 영주농민조합 집행위원, 농민조합 및 반제동맹 설립을 위한 비밀 협의체 조직 등에 관계하였다. 193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4][5]

3. 2. 일제 강점기 및 대한민국


  • 김찬규(金燦奎, 1866년~1929년) : 25세. 자는 사석(士奭), 호는 석연(石然)이다. 대동단 및 의용단을 결성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제255호가 추서되었다.[2]
  • 김동진(金東鎭, 1867년~1952년) : 26세.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정산(貞山)이다. 독립의군부에서 활동하다 2차례 피검 및 구금되었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 제1956호가 추서되었다.[3]
  • 김화진 (金華鎭, 1904년~1946년) : 26세. 자는 영중(英仲), 호는 대팽(大팽)이다. 무섬 출신으로, 경북 영주청년동맹과 신간회 영주지회 집행위원, 영주농민조합 집행위원 등을 역임했다. 농민조합 및 반제동맹 설립을 위한 비밀 협의체를 조직하는 데에도 관계하였다. 193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4][5]

4. 집성촌

지역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양구읍 상리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연박리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정안면
충청남도 청양군 청남면 천내리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구도리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어양리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석포리


5. 인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예안 김씨는 4,859가구, 총 15,313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6]

참조

[1] 웹인용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https://web.archive.[...] 2011-01-25
[2] 웹사이트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공훈자료 https://search.i815.[...]
[3] 웹사이트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공훈자료 https://search.i815.[...]
[4] 뉴스 옛 선비정신 깃든 항일운동의 거점 영주 ‘아도서숙’ 복원 움직임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11-01-23
[5] 웹사이트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공훈자료 https://search.i815.[...]
[6] 지식사전 예안김씨 https://terms.naver.[...] 201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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